션즈화의 조선전쟁 24, 중국군의 한반도 파병결정과 모택동-스탈린의 외교전
인천상륙작전이후 중국군의 한반도 진출의 결정과정은 매우 복잡했다. 복잡하지만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중국은 그 이전까지의 태도와 달리 중국군의 북한진입에 유보적인 입장을 나타냈고, 스탈린은 애매모호한 입장이었다. 즉 중국이 한국전쟁에 신속하게 개입해야 하지만 그것은 중국이 결정할 문제이고 소련은 중국에게 강권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션즈화는 자신의 책에서 중국과 소련이 한국전쟁 개입과 관련하여 막전막후에서 치열한 외교전을 벌인 과정을 제시하고 있다.(261-310)
중국은 소련과의 협상에서 처음의 입장과 달리 군대를 보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스탈린에게 이야기 했다. 아마도 스탈린은 이를 일종의 협박과 비슷하게 받아 들였을지 모른다. 중국이 군대를 파병하는 조건으로 요구한 것은 소련의 지원이었다. 소련은 처음부터 분명한 선을 정해놓고 있었다. 그것은 소련이 직접 미국과 부딪칠 수 있는 상황은 절대로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중국과 소련간 중국군의 파병과 관련하여 짧은 기간동안 치열한 외교전이 오갔다. 여기서 쟁점이 되었던 부분은 소련공군의 지원이었다. 중국은 중국군이 한국에서의 작전기간동안 소련 공군의 지원을 받고자 했으나 소련은 한반도에서 소련공군은 직접지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중국과 소련간의 입장충돌을 유엔군이 38선을 돌파하는 순간까지도 계속되었다. 중국은 한편으로는 유엔군이 38선을 넘으면 개입할 것이라는 신호를 보내는 동시에, 소련에게는 파병하지 않을 수 있다고 이중 플레이를 했다.
중국과 소련이 중국군의 한반도 파병을 놓고 이렇게 짧은 기간 치열한 외교전을 벌인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소련의 이런 외교전은 한국전쟁에 중국이 파병하기로 했다는 의사결정의 측면에서 다루어졌고, 중국과 소련간의 갈등과 외교전이라는 측면에서는 다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소련은 중국이 파병을 안할 것같은 태도를 보이자, 스탈린은 소련대표부의 완전한 철수와 북한지도부의 만주행을 지시하기에 이른다. 그런 상태가 되어서야 겨우 중국은 파병하기로 결정한다.
중국의 의사결정과정에서 당기구의 회의와 같은 것은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모든 결정은 모택동에 의해 내려졌을 뿐이다.
결국 그 과정은 스탈린과 모택동의 머리싸움이었다.
스탈린으로서는 직접 한국전쟁에 참가하게 될 경우 세계전략 차원에서 유럽에서의 공산주의 구축이란 과업에 지장을 받게 된다. 원래 한국전쟁을 시작한 이유도 고트발트 문서에 의하면 미국의 관심을 유럽에서 아시아로 돌리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자신들이 오히려 아시아에 끌려 들게 되면 전략적 구상이 흐트러지게 된다.
게다가 스탈린과 모택동은 세계 공산주의 운동에 있어서 일정한 역할 분담을 약속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아시아 지역을 소련은 유럽지역에 중점을 둔다는 식의 역할 분담이 있었을 것이다.
소련이 마지막에 철수하는 방안까지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맥아더가 북진할 경우, 그것이 단순히 한국전쟁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대륙 진출까지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맥아더의 그런 의도를 중국과 소련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스탈린은 결정적인 순간에 과감한 철수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다.
결국 최후의 순간에 중국이 파병을 결정했고 그것은 스탈린의 승리를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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