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잡기] 슬픔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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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여 안녕(Bonjour Tristesse)

중고교 시절 애용했던 삼중당 문고는 외투 주머니에 들어가는 크기에 저렴한 가격이라서 인기가 많았다. 요즘 학생들에게 그 책을 보여주면 그 무뚝뚝한 디자인에 놀랄 것이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의 책의 재질과 색감은 얼마나 고급스러운지.

그 작은 책자로 <무기여 잘 있거라> <대지> <부활> 등을 읽었던 것 같다. 그 중 분명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책도 있었는데 이상하게 열외였다. 소녀 감성의 제목이 거북했을 거라는 추측을 해본다. 슬픔이여 안녕? 하기엔 가난한 농삿꾼의 자식들은 너무 자주 슬펐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도서관에서 굴러다니는 이 책에 시선이 머물렀고 잠깐 만에 다 읽었다. 삼중당 문고는 아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청소년 시절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세실과 시릴의 애정 행위가 기억에 남았을지도.

17세의 세실과 아버지, 아버지의 여자 친구 엘자는 바닷가 별장에서 한 달 동안 여름휴가를 보내기로 했다. 수영하고 모래에서 뒹굴고 식사하고 술 마시는, 한가하다 못해 권태롭기까지 휴가.

어느날 차를 몰고 나타난 죽은 엄마의 친구 안느는 고상한 아름다움으로 단번에 아버지를 흔들어 버렸다. 아버지는 데리고 온 여자 친구를 버리고 안느와 결혼을 선언했다. 세실이 꾸민 앙큼한 반란은 엘자와 해변에서 사귄 자신의 남자 친구 시릴이 깊은 관계인 것처럼 꾸며 아버지의 질투심을 유발하는 것이었다.

작전은 성공하여 아버지는 한 때 자신의 여자였던 엘자를 몰래 만났고 우연인 듯 이 장면을 목격한 안느는 충격을 받아 파리로 떠났는데 그 길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

부녀는 잠깐 자책했으나 시간이 흐르자 둘은 여전히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떠들썩하게 살아가면서 가끔씩 다가오는 슬픔에게 안녕? 하고 인사를 한다.

‘나른함과 달콤한 속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이 낯선 감정을 슬픔이라고 하는 엄청나게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러도 좋을지 나는 망설여진다.’

몽상적인 첫 문장이다.
당시가 아무리 전후 시대라고는 하지만 쾌락에만 집중하는 세실, 그리고 부녀의 지나친 친밀감이 어색하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이 지성계를 휩쓸던 시대라고는 하지만 엘렉트라 콤플렉스가 과하게 작품에 들어앉았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어색한 번역본 보다는 원문으로 이 작품을 읽었더라면 섬세한 심리 묘사에 좀 더 감동했을거라는 생각도 해본다.

프랑스와즈 사강(1935-2004)은 프랑스 카자라크 출신으로 부유한 실업가의 막내 딸로 태어나 19세에 이 작품으로 문단을 흔들었다. <어떤 미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등으로 인기를 얻었으나 술, 도박에 빠져서 입원하기도 하고 재산을 압류 당하기도 했다.
당시에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한 나는 나 자신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말로 파란을 일으켰다고 한다.

프랑스와즈 사강 / 정홍택 역 / 소담 / 2013(원 1954) / 4500원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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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학창시절에는 정말 책을 많이 안 읽었어요.
대학에 가서 전공 때문에 읽기 시작한 책이 습관이 들어서 이제는 꽤 책을 많이 보는 사람이 됐지만요..ㅋ

슬픔이여 안녕...이라, 왠지 제목에서 남다른 의지가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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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라기 보다는 17살 여자아이의 변덕스러움 같았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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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저도 중고등 학생 즈음에 교복 주머니에 쏘옥 들어가는 빨간책(영어 원서) 많이 본듯 하네요 ㅋ

하지만 보기만 하고 실제 내용은 많이 보지 못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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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영어를 잘 하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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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주르란 아는 단어 나왔습니다!

그 시대엔 다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아버지 너무 줏대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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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둥이래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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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감성이 풍부해질 것 같은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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