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잡기 20-7] 단편소설의 진수를 보여준, '안녕 주정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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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소설책을 접하지 않았는데 전염병 COVID-19로 인한 어수선함을 잊으려 권여선씨의 작품을 골라 들었다.
모두 7편의 단편이 수록된 '안녕 주정뱅이'에는 마지막 편을 제외하고 술 마시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몹시 삶에 지친 기색으로 그들은 술을 마신다. 흔히 취하면 피아 구분이 없어지고 아성을 허물기 마련인데, 작품 속의 주인공들은 혼자 취하거나 각자 취해서 고함을 지르거나 삼킨다.

1편 '봄밤'에서는 악성 류머티즘으로 죽어가는 남자와 이혼하고 아이마저 빼앗긴 여자가 함께 살다가 죽는다는 내용이며
2편 '삼인행'에서도 이혼하기로 한 젊은 부부와 그 친구가 강원도 동해안으로 여행을 떠나서 밤새 술마시다 눈에 갇힌다는 내용이다.
또한 3편의 '이모'는 맏딸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시이모가 마지막 2년간 자취를 감췄다가 불치병을 얻어 생을 마감하기 전에 삶의 회한을 털어 놓았다. 자기만의 삶이 없었던 그녀는 혼자 살면서 책을 읽고 술을 마셨다.
4편 '카메라'는 가난한 헬스 트레이너였던 남자가 여자와 찍으려고 카메라를 샀다가 불법체류자에게 맞아 사망한 사실을 여자는 전혀 몰랐다. 분노에 떠는 남자의 누이와 술잔을 놓고 마주 앉았다.
5편 '역광'에서 역시 커피잔에 소주를 따라 마시는 젊은 신인작가가 등장하고 6편 '실내화 한 결레'는 고교 시절 친했던 세 명이 서른 두 살에 만나 밤새 놀고 억망으로 취했으나 평탄치 않은 속내를 보이지 않는 그녀들을 다루고 있다. 마지막 7편 '층'에서만 술마신 사람들이 아니다.

'삶에서 취소할 수 있는 건 단 한가지도 없다.
지나가는 말이든 무심코 한 행동이든, 일단 튀어 나온 이상 돌처럼 단단한 필연이 된다.'(136)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를 '검게 탄 자국'에 비유하면서 결코 지워지지 않음을 저자는 주목하는 것 같다.

텔레비전에서든 사회 범죄에서든 친구 가족간에든 세상은 술을 권하고 있다. 술이 없는 대화는 있을 수 없다는듯 사람들은 취하고 싶어한다. 일단 무장이 해제되고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 날 숙취처럼 후회가 밀려 들고, 그것을 알면서도 계속 술에 기댈 수 밖에 없는 그들은 그래서 죽음을 휴식처럼 껴안는다.

'레가토'라는 작품을 읽었을 때 참 잘 쓰는 작가라는 것은 알았다. 단편 역시 굉장히 뛰어나다. 작품은 이렇게 쓰는 것이라는 걸 알려주는 수작들이다.

권여선 / 창비 /2018/12,000원/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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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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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잠님께서 수작이라 명하는 작품은 꼭 읽어 봐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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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 보니..술을 마시지 않고 대화하는 것을 많이 연습해야 겠네요..
코로나로 인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은데 술없이 대화하기를 실천할 수 있는 시간일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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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가정적으로 변하는 시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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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뜨끔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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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주가 여기 한명 추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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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예전에 추천받아 바로 사뒀는데, 펼쳐보지를 않았네요. 이번 주말에는 완독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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