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한국전쟁에서 북한과 소련 중국의 관계개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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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은 북한이 중국과 소련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라고 할 수 있다. 김일성은 조속하게 정전협정을 체결하고 전후복구를 하고자 했으나 중국과 소련은 쉽게 정전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애시당초 중국과 소련은 전쟁을 중지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스탈린은 소련과 미국의 대결이라는 전지구적인 전략적 고려에서 출발해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마오쩌뚱을 지지하면서, 평화적 협상이라는 문제에 있어서 결코 양보하지 않았다. 즉 스탈린이 사망할 때가지, 중국과 소련은 조선문제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일치된 전략을 갖고 있었다”(457)는 것이다.

중국이 정전협정을 서두르지 않은 표면적인 이유는 전쟁포로 문제였다. 중국은 유엔군에게 잡힌 포로를 모두 송환하고자 했으나 유엔은 중국의 요구를 거부했다. 중국이 포로문제로 전쟁을 지속한 것은 스탈린의 구상에 따른 것으로 보아야 한다. 스탈린은 가급적 오랫동안 미국을 한국전쟁에 붙잡아 놓고 유럽에서의 사회주의 체제를 강화시켜가고자 했던 것이다 .

중국이 스탈린의 지침에 순수하게 따른 것은 스탈린이 중국을 아시아 사회주의 운동의 맹주로 인정하겠다는 약속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매우높다. 중국의 한국전쟁 참가결정 시기에 스탈린은 코민포름을 본딴 동방정보국의 필요 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제까지 스탈린과 모택동간 아시아 사회주의 운동에서 중국을 맹주로 내세우기로 한 문제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은 듯 하다. 그러나 스탈린이 모택동을 이렇게 이용함으로써 중국과 미국을 한국전쟁에 몰아 넣으려고 한 목표는 충분하게 납득가능하다.

중국을 한국전쟁에 몰아 넣음으로써 중국과 미국이 손을 잡지 못하도록 했으며, 미국도 유럽에 대한 관심을 집중하지 못하도록 하는 효과를 거둔 것이다. 스탈린이 체코 대통령 고스발트에게 보낸 전문은 그의 전략적 구상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소련이 한국전쟁에 직접참전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한 이유도 유럽에서 행동의 자유를 확보하고자 하는 전략적 고려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어차피 냉전으로 인한 미소간 갈등은 예정된 상황이었다. 많은 학자들은 한국전쟁을 냉전의 기원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분석은 제2차대전이전부터 존재하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갈등을 전혀 무시한 처사다. 연합국이 독일과 대응하여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과 동맹을 맺은 것은 비정상적인 대외정책의 결과일 뿐이다.

만일 진영논리에 충실했다면 영국과 프랑스가 정상이었다면 소련에 대응하기 위해 독일과 손을 잡았어야 했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는 멀리있는 사회주의 국가 소련보다 바로옆에서 자신들의 지위를 위협하는 독일을 더큰 위협으로 생각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련은 한국전쟁을 통해 결정적인 시기에 미국이 유럽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김일성은 처음에는 한반도 통일을 국제주의적인 관점에서의 혁명적인 과업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전쟁이 불리하게 되고 더 이상 전쟁을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소련이 지속적으로 전쟁을 강요하면서 현실적인 선택을 취하게 된다.

김일성이 제일먼저 착수한 것은 권력의 강화와 소련의 영향력 배제였다. 당시는 중국군이 주둔한 상황으로 소련의 입김이 약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곧바로 허가이를 위시한 소련파를 제거한다. 소련파의 제거는 중국으로서는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이후 정전협정이 계속되면서 김일성은 독자적인 행동공간을 모색하게 된다.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이 스탈린 사후 곧바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한국전쟁 전반의 구상이 스탈린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김일성은 이후 중국의 영향력 배제를 제1의 과업으로 선정했을 것이다. 1955년 주체사상을 부르짖은 것은 당시 북한의 입장에서 중국이나 소련과 같은 외세의 의존으로는 희생양 밖에 안된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1956년 8월 반당종파사건과 그 이후 이어진 1958년의 중국군 철수는 중국과 소련의 갈등을 절묘하게 이용한 북한의 전략적 승리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정전협정의 협상과정은 김일성이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깨닫는 계기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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