션즈화의 조선전쟁부록 16-5 스탈린 사후 소련과 중국의 한국전쟁 정전에 관한 논의(1953년 3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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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3월 21일 조우언라이가 모스크바로 돌아온 저녁, 말렌코프, 베리아, 불가닌, 후루시쵸프 및 신임중국대사 쿠즈네쵸프 등과 회담을 가지고 한반도 문제에 대한 토의를 가졌다.

조우언라이는 미국이 독자적으로 정전협상의 무기한 중단을 선언한 무례한 행위를 이용해 회담재개 문제를 일정기간 미루고자 주장했다.

“우리에게 전쟁포로의 송환을 위한 투쟁은 정의로운 행동이지만, 적들이 고의로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 우리에게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를 단련시켜 국방력을 강화시킬 수 있고 국제평화운동을 강화할 수 있다….

정전의 현실화를 지연시키면 미국의 병력과 자금을 소모시킬 수 있고, 특히 적을 전략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처하게 할 수 있으며 서구진영 내부의 모순을 격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소련은 그 이전과 다른 전략적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한국전쟁이 지속되면, 미국의 군비확장에 유리해져서 경제위기의 도래가 지연되고, 미국이 다른 국가들에게 자신들의 침략야욕에 복종하도록 강요하는데 유리하게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소련의 이런 입장은 미국을 유럽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스탈린의 생각과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소련이 이런 판단을 하게 된 과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소련은 마오쩌뚱에게 보낸 편지에서 정전협정을 가능한 한 신속하게 체결할 것을 요구했다. “결코 한 순간도 지체하지 말고 가능한 모든 방법을 사용하라”는 것이었다.

소련의 입장을 확인하자 조우언라이는 소련의 입장을 수용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마오쩌뚱의 지시를 받아야 하겠다고 했지만 “과거 한동안 우리가 너무 강경하게 대응했었다. 마오쩌뚱 동지 역시 정협회의 중 전쟁포로의 송환문제는 정의와 관련된 투쟁이라고 강조했었다”고 여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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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the end of all things has drawn near. Therefore be sober-minded and be sober unto prayers.(1 Peter 4:7)

Question from the Bible, Why are some children born with disabilities?

Watch the Video below to know the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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