션즈화의 조선전쟁 부록 16-3 1953년 초반 상황에 대한 중국과 소련의 그리고 북한의 전략적 입장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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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즈화는 당시 소련과 중국이 동일한 전략적 관점을 지녔다고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차이가 있음을 충분하게 알 수 있다.

살펴보아야 할 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은 소련이 생각하는 것처럼 전쟁을 장기적으로 끌고 가려고 했을까? 하는 점이다. 그점에 대해서는 다소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마오쩌뚱은 조건만 좋다면 전쟁을 계속해서 상대방이 양보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련이 제공한 대규모의 시기적절한 원조는 중국의 자신감을 강화시켰다.

1953년 초 중국에 배치된 중국의 군사력은 병력, 장비, 훈련 공사 및 교통부문 뿐만 아니라 탄약과 식량비축 등에서도 개전이래 가장 상태가 좋았다.(467, 주22, 항미전쟁원조사, 제3권 pp.358-372)

한편, 북한의 지도자들은 전쟁의 피로감으로 휴전을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중국지원군은 연합군과의 일전을 기대하고 있었다.(467, 주23, 수즈다레프의 1953년 제1분기 업무보고, 항미원조전쟁사, 제3권, p.358)

중국이 스탈린의 기대와 달리 적극적인 일전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장지에스를 동원해 중국을 봉쇄한다’는 것을 고려한 것이었다.

마오쩌뚱은 2월 7일 “중국은 전쟁을 끝까지 수행할 준비를 하고 있으며, 미 제국주의자들이 손을 떼고 중국과 소련의 인민들이 완전히 승리를 거둘때 까지 싸우겠다”고 한 선언은 스탈린의 구상과 상당한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모택동군사군집, 제6권, p.341)

(중국은 미국을 한반도에 붙잡아 놓음으로써 미국이 중국본토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란 측면에서 중국이 입장을 추측할 수 있다.)

중국은 한국전에서 미군에게 군사적인 압박을 가함으로써 장지에스를 통해 중국본토를 봉쇄한다는 구상을 분쇄하려고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은 평화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미국의 입장을 살펴보면서 전투행위를 적극적으로 준비했다.(468, 주27, 2월 24일 군사훈련부의 조선파병부대에 대한 3개월 전투훈련실시 계획에 대한 펑더화이의 서면지시 ‘조선에 파병될 신병의 훈련은 군사훈련 80%, 정치훈련 20%가 적당, 팽덕회 연보, p.544)

1953년 초반에는 북한과 중국 소련의 전략적 입장이 가장 크게 갈라지는 시기로 보아야 할 것이다. 1953년에는 북한의 조속한 정전에 대한 입장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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