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행복한 사람의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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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주는 한 달에 한 번 우리 가게에 왔다. 인쇄업체의 사장이었던 그는 내가 세를 든 건물 뿐 아니라 주변에 건물을 여러 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다른 건물주와 만날 일이 있으면 사랑방처럼 우리 가게를 약속장소로 이용하곤 했다. 매번 당연한 듯이 커피값을 내지 않는 건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부동산 업자와 같이 나타나서 이 길이 살아났으니 가게세를 올려야 한다는 얘기를 보란듯이 하고 있을 때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사막같이 비어 있었던 거리였다. '이 길을 살린 건 나라구요!' 라고 말하고 싶은 걸 몇번이고 참았다. 그 때 건물이든, 아파트든 내 이름의 부동산을 꼭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가 가게에 놀러왔다. 친구는 제주도의 농가를 개조해서 하는 독채민박업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는 아는 언니와 함께 제주도에 아파트를 분양받으러 간다고 지나가듯이 말했다. 우연히도 그 무렵 기요사키의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시리즈를 전부 찾아서 읽고 있었다. 문득 기요사키의 첫 투자는 하와이의 아파트였다는 것을 떠올리고 친구에게 말했다.
  "나도 따라갈래!"
 그렇게해서 그 다음날 커피가게 앞에다 [임시휴업]이라고 써붙여놓고 제주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 때가 전국적으로 부동산경기가 얼어붙었던 2012년도 여름이었다.

서귀포시 대정읍. 그곳은 KIS, 브랭섬홀, 노스런던컬리지 이렇게 큰 규모의 국제학교 3개만 딸랑 있는 황량한 신시가지였다. 캐논스 빌리지라는 아파트가 하나 있었는데 집주인들은 국제학교 학부모와 교사들을 상대로 연세-제주는 연단위로 세를 내는 곳이 많았다-를 후하게 받고 있었다. 국제학교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과정이 있는데, 기숙사 생활도 가능하지만 어린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같이 아파트에서 거주하면서 통학하는 걸 선호했다. 2017년도에 세인트존스베리라는 국제학교가 하나 더 생길 예정이라고 했다.

나는 기요사키가 가르쳐 준대로,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공공시설, 학교 주변의 아파트를 찾았다는 것 직감했다. 더구나 미분양인 상태라 발코니 확장비 무료에 중도금 무이자이며 생애 첫주택이라 취득세를 안내도 되는 조건이었다. 물론 통장에 잔고는 없었다. 나는 보험약관대출로 받은 돈으로 계약금을 냈다.

시간은 흘러갔다. 아파트는 완공되었지만 국제학교가 개강하는 9월을 넘겨서 세입자를 찾을 수 없었다. 여름 방학때 입주를 시작했다면 제주시의 아파트에서 통학을 하는 사람들이 새아파트로 왔을 것이다. 세입자를 찾을 수 없으면 대출금 이자를 낼 수 없었다. 분양받은 사람들은 프리미엄 없이 패닉셀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침착을 유지하고 싶었다. 한 학기를 공쳐도 다음학기에 세입자를 받을 수 있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최악의 경우를 가정해도 잃을 게 없었다. 그래도 다른 집과 차별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저축한 돈으로 아파트에 TV와 냉장고 세탁기를 사 넣고 커튼을 달고 식탁과 의자, 이불과 식기세트까지 구비해놓았다. 그러면 서울에서 아이때문에 급히 내려와 가전제품을 살 경황이 없는 사람이 풀옵션인 내 아파트를 선택할 것 같았다. 마냥 부동산에만 맡겨둘 수 없어서 제주 국제학교학부모카페에 가입해서 예쁘게 나온 인테리어 사진과 함께 임대글도 올렸다. 하루만에 전화가 왔다. 그래서 나는 신축아파트에서 가장 빨리 세를 받게된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 정부는 금리를 점점 낮췄다. 나는 받은 연세에서 이자를 내고 남은 돈으로 전기차 충전기 회사의 주식을 분할 매수했다. 제주도는 에코시티를 표방하며 전기차 보급률이 한국에서 최고로 높았는데, 우연히 등본을 떼기위해 아파트 옆 동사무소에 갔다가 전기차 충전기를 본 것이 계기가 되었다. 또 하나의 숨겨진 호재가 있었다. 아파트 뒤쪽으로 곶자왈생태공원이 있었는데, 차로 5분 거리에 신화역사공원이 세워질 예정이었다. 대형 쇼핑몰과 놀이시설이 들어오면 많은 직원들이 살 곳이 필요할 것이다. 2017년 후반 개장. 너무나 멀고 멀게 느껴졌다. 그러나 궁금함이 먼저였다. 신화역사공원이 건설되는 부지주변을 걷다가 우연히 한 시공사의 로고를 발견했다. 나는 제무재표를 훑어보았고 그 회사가 제주에서 건물 시공을 많이 하고 있으며 주가가 저평가 되었으며 배당을 3프로나 주는 것을 확인하고 기뻐했다. 그 주식도 분할매수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행복한 사람 편이었다. 자기 전에 제주도로 사람들이 양떼처럼 몰려가는 것을 상상하면 그 날 일이 아무리 고되어도 건물주가 찾아와 말이 안되는 소리를 해도 웃으면서 잠들 수 있었다. 어느새 제주도가 TV 오락프로에 하루가 멀다하고 나오기 시작했다. 친구가 사려고 했던 세화해변의 농가주택은 한 채에 1000만원이었던 것이 5억을 호가하고 있었다. 내가 분양받은 아파트는 최근 가격이 세 배 올라서 거래되고 있다. 전기차 충전기 회사는 3배의 수익을 주었다. 그리고 분할매수 했던 한국종합기술이라는 회사는 제주 신공항 테마주로 엮이는 바람에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었다.

몇 년전, TV에서 지디가 신화역사공원 개장 광고를 하는 걸 봤다. 황량한 들판같은 부지 주변을 걷고 있었는데 어느새 부분개장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 때의 나를 돌이켜보면 가능성밖에 가진 것이 없었던 것 같다. 그 오랜 시간이 1초같이 느껴지곤 한다. 그 때 친구가 제주도에 간다고 했을 때, "나도 따라갈래!"라고 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건물주에게 시달리는 삶을 살고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은 언제나 행복한 사람의 편이라는 것을 이제 나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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