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르륵 또르륵 통통 1 오리온

(1인칭으로 쓴 초고를 3인칭으로 바꿔서 퇴고합니다.)

1

1994년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날

“이수야, 이 인형 귀엽지? 헤헤.”

소휘가 품에 콕 안기는 하얀 곰인형의 코를 만지며 말했다. 소휘는 엄지와 검지로 인형의 코를 살짝 쥐었다가 풀고는 검지로 콧등을 살며시 비볐다. 소휘가 환하게 웃자 작은 눈이 더 가늘어졌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에 앞머리를 약간 내린 소휘는 친구에게 줄 생일 선물을 고르고 있었다. 이수는 같이 가자는 소휘를 따라오긴 했지만, 인형을 사본 적이 없어서 꿀먹은 벙어리마냥 소휘를 졸졸 따라다니기만 할 뿐이었다. 소휘는 인형을 보면 코를 만지고 싶어진다며 만지는 인형들마다 코를 만지작댔다.

“어때? 둘 중에 누가 더 귀여워?”

소휘가 하얀 곰인형과 노란 병아리인형을 양 손에 하나씩 쥐고는 이수에게 보여주며 환하게 웃었다. 소휘가 웃을 때마다 작은 코와 도톰한 입술이 더욱 돋보이며 매력을 발산했다.

“어, 글쎄.”

이수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머리만 긁적였다.

“난 노란색을 좋아하는데, 요 곰인형이 더 예뻐서 고민이야.”

소휘가 미간을 좁히며 아랫입술을 내밀었다. 도톰한 입술이 더 폭신한 모습을 드러내며 이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수는 소휘의 입술을 보며 너무 예쁘고 귀엽다고 생각했다.

“선물 받을 친구 취향은 어떤데?”

이수는 드디어 할 말이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아, 맞다. 내 인형 살 게 아니지? 헤헤.”

소휘는 눈앞에 가득한 인형들을 만지작거리다 정신줄 놨다며 손가락 하나로 이수의 팔뚝을 쿡 찔렀다. 그러자 이수는 마치 전기에 감전된 듯 찌릿함을 느꼈다. 여자의 손가락이 몸도 아니고 두꺼운 겨울옷으로 덮인 팔에 닿긴 처음이었다. 소휘는 친구가 곰인형을 좋아할 거라며 아쉬운 듯 노란 병아리 인형의 코를 한 번 더 만지며 마음을 달랬다.

소휘와 이수가 인형 가게를 나오니, 하얀 곰인형보다 더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우아~~~ 별이다!”

“별?”

이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별을 찾아봤다. 눈이 내리면 분명 구름이 가득한 하늘일 건데도 오리온이 보였다. 오리온은 어제 있던 그 자리에서 소휘와 이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응. 별. 난 하얀 눈을 별이라고 불러. 밤하늘의 진짜 별은 너무 높이 있어서 직접 만질 수 없잖아. 그래서 직접 만져보라고 하얀 눈을 뿌려주는 거래. 진짜 별도 이 눈처럼 차갑겠지?”

별이 차가울 수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수는 아무말 없이 소휘의 말을 들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차가운 바람이 두 사람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자 눈은 언제 내렸냐는 듯 하늘에서도 길에서도 흔적을 감춰버렸다.

“에이. 좀 더 내리지. 아쉽다.”

소휘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쉽다는 듯 다시 아랫입술을 내밀었다. 이수는 소휘의 입술을 보며 손을 대면 폭신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저기 별 세 개가 나란히 있는 거 보여?”

“세 개? 어디?”

이수가 오리온자리를 가리키자 소휘는 이수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더니 어느 별인지 잘 모르겠다며 이수 옆으로 바짝 붙었다. 그러자 소휘의 긴 생머리가 이수의 가슴에 닿았다.

“어디?”

소휘는 어느 별이냐고 다시 물으며 등을 이수의 가슴에 바짝 붙였다. 그러자 소휘의 등이 이수의 어깨 안으로 들어왔다. 기분 좋은 향기가 이수의 코를 간질였다.

“아, 저기 저 세 개? 쟤가 오리온이야?”

소휘는 이제야 찾았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어? 어. 쟤네 위로 두 개, 아래로 두 개 더 보일 거야. 마치 모래시계 모양처럼.”

소휘는 한참을 보다가 위로 두 개, 아래로 두 개의 별을 더 찾았다.

“와~~~ 저게 오리온이구나. 신기해. 나 별자리는 처음 봐. 너 별자리 잘 아는구나. 역시 넌 내 생각대로 로맨티스트야. 나중에 여자친구 생기면 잘해줄 것 같아. 곧 크리스마슨데 그 전에 생겨야 할 텐데.”

소휘는 아직 모태솔로인 이수를 걱정하며 말을 이었다.

“너무 걱정하지마. 때가 되면 네게도 여자친구가 짠~~~ 하고 나타날 거야.”

아직 여자를 사귄 적이 없는 이수는, 여자친구가 있으면 뭐가 좋은지 알지 못했다. 여자친구가 있어 본 적이 없으니, 없으면 뭐가 불편한지도 몰랐다. 그런 이수를 소휘는 챙기고 싶어 했다. 그래서 소휘는 입버릇처럼 여자친구가 곧 생길 거라고 위로해주곤 했다. 소휘는 남자친구가 있어서 이수에게 늘 미안했다. 하지만 이수는 여자친구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여자친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소휘에게 ‘곧 여자친구가 생길 거야’라는 말을 자주 들으니 여자친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소휘는 이수가 너무 외로워 보였지만, 이수는 자신이 외롭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참, 너, 크리스마스 선물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했지? 다음 주가 크리스마슨데 그 전까지 여자친구 안 생기면 내가 해줄게.”

소휘는 여자친구가 없는 이수가 걱정됐다. 벌써 고등학교 2학년 겨울인데 아직도 모태솔로라니, 이수처럼 멋있고 착하고 다정한 남자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남중에 남고라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이수는 지하철역까지 소휘를 바래다주고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가장 높은 곳에서 하얗게 빛나는 오리온이 한눈에 보였다. 분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지친 이수의 몸과 마음을 달래주기에 충분한 아름다움이었다. 이수는 오리온을 계속 확인하며 버스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버스정류장으로 걷는 내내 힘이 났다. 귀를 아리게 할 만큼 차가운 겨울바람이 이수의 얼굴을 때렸지만, 이수의 발걸음엔 힘이 넘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수에게 곧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힘찬 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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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 많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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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행복한 💙 오늘 보내셔용~^^
2020 쥐뿔(?) 스팀 ♨ 힘차게 가즈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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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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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소설 올리시는건가봐요.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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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다시 올려요. 정주행 해주실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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