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르륵 또르륵 통통 2 목도리

2

이수와 소휘는 분식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났다. 분식점은 크지도 작지도 않았고, 소휘는 1년이나 일한 나름 경력자였다. 공부에 딱히 뜻이 없는 고등학생들이 주로 서빙을 했고, 주방엔 대학에 가지 않은 20대의 젊은 청년들과 아저씨, 아줌마들이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소휘 남자친구인 김훈도 주방에서 일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훈아’ ‘훈이 형’ ‘훈이 오빠’라고 그를 불렀다. 소휘와 김훈은 사귄 지 2년째였고 둘은 깊은 사이였다. 이 분식점에서 만나 사귀었기에 둘의 연애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둘은 가게 공식 커플이었다.

서빙 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은 저녁 5시부터 밤 10시까지만 일했고, 주방 직원을 포함한 모든 정직원은 밤 11시까지 한 시간을 더 일했다. 그래서 김훈보다 먼저 일이 끝나는 소휘는 이수와 함께 퇴근을 했다. 둘은 만난 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았지만, 마치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던 것처럼 친했다. 둘은 서로에게 통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영혼의 친구 같은 무언가가.

둘은 일을 마치고는 분식점이 있는 종각 역에서 종로3가 역까지 걸어갔다. 3호선을 타야 하는 소휘도 종로3가 역으로 가야 했고, 이수가 타는 버스도 종로3가 역에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매일 같이 한 정류장을 20분 정도 천천히 걸으며 많은 얘기를 했다. 둘은 일부러 더 느릿하게 걷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종로3가 역이 조그만 더 멀리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둘은 걸으며 노점의 인형도 구경하고 액세서리도 구경했다. 그러다가 가끔 하나씩 사곤 했다.

“이수야, 이거 색깔 넘 예쁘다.”

소휘가 파란색 유리반지를 손가락에 넣어보며 말했다. 파란색 같기도 했고 바다색 같기도 했고 하늘색 같기도 한 파란색 유리반지가 광택을 내며 반짝였다. 2개가 한 쌍인 반지를 손가락에 넣더니 하나를 빼서 이수에게 주며 말을 이었다.

“너도 껴봐.”

“나도?”

“응!”

이수는 반지를 받아 소휘처럼 네 번째 손가락에 넣으려 했지만 조금 작았다.

“작은데.”

“그럼 새끼손가락에 넣어봐.”

이수는 소휘의 말대로 약지에 반지를 밀어넣었다. 딱 맞았다.

“까르르르~~~” 소휘는 한참을 웃더니 말을 이었다. “딱 맞네. 그럴 줄 알았어. 너랑 나랑은 소울 메이트야.”

“소울 메이트?”

“응. 여자 네 번째 손가락에 들어가는 반지가 남자 새끼손가락에 들어가면 천생연분이래. 그러니까 우린 소울 메이트인 거지. 까르르르~~~”

이수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소휘는 이미 남자친구가 있었다. 1년이나 넘게 사귄 남자친구.

“훈이 오빠는 손가락이 굵어서 아마 안 들어갈 거야. 까르르르~~~”

“어? 어…”

당황해 하는 이수와는 달리 소휘는 신나게 웃으며 반지 값을 치르고는 다시 발걸음을 내딛었다.

“우리 이거 우정반지 하자. 나 하나 너 하나. 원래 두 개가 한 쌍인데 서로 하나씩 하고 있는 거야. 우린 친구니까.”

“우정반지?”

“응.”

소휘는 반지를 한참 보더니 반지 색이 너무 예쁘다는 말을 반복했다. 잠시라도 말을 쉬면 안 된다는 듯 소휘가 다시 말을 이었다.

“사람들이 우리를 이상하게 봐서 걱정이야. 사람들이 우릴 보고 쑥덕대는 거 들었어?”

“사람들이?”

“그래. 우리가 사귀는 거 같다고 소문이 났더라니까. 나도 카운터 보는 유니 에게 들어서 알았어.”

유니는 사장님 딸이고 이수와 소휘보다 한 살 아래였다. 막내 딸이어서 그런지 늘 밝고 순박했다.

“소문? 어떤 소문?”

“우리가 사귄다나? 훈이 오빠하고 데이트 못한 지 한참 됐잖아. 훈이 오빠 학교 졸업하고 정직원 된 후로는 제대로 된 데이트를 못 했어. 그런데 너 나타나고 나서 너랑 매일 붙어 다니니까 그런 소문이 도는 것 같애.”
이수는 깜짝 놀랐다. 소휘와는 그냥 친구 사이일 뿐이 아니던가. 여자에게 관심이 없는 이수는 상상도 못했던 소문이었다.

“어떡하지? 훈이 형 화났겠다.”

“아니야. 괜찮아. 오빠가 괜찮다고, 헛소문인 거 안다고, 날 믿는다고 했어.”

“다행이다.”

이수는 심장이 쿡쿡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그런데, 우리가 잘 통하는 건 맞는 것 같애. 우린 이제 우정 반지도 했으니까 소울 메이트다. 알았지?”

“어? 어…”

이수는 대답하긴 했지만 소울 메이트가 무얼 말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게 어서 여친 만들어. 그래야 사람들이 우릴 이상하게 안 보지.”

“어! 그… 그래.”

소휘는 여친이 금방 생길 거라고 위로하며 이수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이수는 소휘의 손이 어깨에 닿자 심장이 더 빠르게 뛰었다. 아플 만큼 빠르게.

이수는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소울 메이트. 영혼의 단짝이란 뜻인가?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이수는 소울 메이트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영혼 그리고 친구. 영혼의 친구란 뜻이겠지? 좋은 뜻이네.’


1994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전날. 이수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는 날이었다. 어렸을 땐 재미난 만화를 볼 수 있어서 크리스마스가 좋았다. 그것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인 이수. 곧 3학년 수험생이 되는 이수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자, 받아.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아무래도 크리스마스 전까진 여친이 안 생길 것 같아서 내가 준비했어. 헤헤.”

알록달록한 포장지를 내미는 소휘. 이수는 선물을 보자 몸이 굳어버렸다. 설마 진짜 준비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수가 포장을 뜯자 파란색 목도리였다. 손가락에서 반짝이는 반지와 비슷한 색이었다.

“야, 내가 이 색깔 찾으려고 아침부터 종로를 싹 다 뒤졌잖아. 헤헤. 너를 보면 파란색이 생각나. 그래서 파란색으로 준비했어. 어서 해봐. 헤헤.”

“와~~~ 정말 너무 고마워. 정말 정말 고마워.”

처음 받아보는 크리스마스 선물에 이수가 당황을 하자, 소휘는 이수 손에서 목도리를 뺏었다.

“줘봐. 내가 해줄게.”

소휘는 두 팔을 크게 벌려 이수의 목에 목도리를 걸었다. 그 바람에 소휘 얼굴이 이수 얼굴과 너무 가까워지고 말았다. 누가 보면 둘이 뽀뽀라도 하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소휘의 입술과 이수의 입술은 겨우 1센치미터 거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이수의 코에서 달콤한 체리 향이 지나갔다.

이수는 소휘의 갑작스런 행동에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그런 이수의 모습이 재밌는지 소휘가 가느다란 눈이 더 가늘어지게 미소 지었다.

“헤헤. 놀랐니? 당황하긴. 까르르르~~~”

소휘는 이수 목에 걸린 목도리를 한 바퀴 더 돌렸다. 다시 한 번 소휘의 입술이 이수의 코에 체리향을 전해줬다. 이수는 체리향을 느끼며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처럼 짜릿함을 느꼈다.

“냄새 좋지?”

“냄새?”

“응. 내 입술에서 나는 체리 향.”

소휘는 더 장난치고 싶어졌다. 아직 여자를 사귀어본 적이 없는 이수가 당황하자 더 놀려먹고 싶어졌다.

“너도 한 번 발라봐. 이거 입술에 바르면 입술이 엄청 부드러워져.”

소휘가 주머니에서 입술에 바르는 스틱을 꺼내 이수 얼굴에 내밀었다. 그러곤 직접 발라주겠다며 뚜껑을 열고는 바로 이수 입술에, 부드럽게 좌로 한 번 우로 한 번 흔적을 남겼다. 그러더니 까르르 웃는 소휘.

“까르르르~~~ 너랑 나랑 간접 뽀뽀 한 거다.”

뽀뽀라는 말이 이수는 얼굴이 벌개질 정도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 모습이 너무 재밌는 소휘는 계속 깔깔대며 웃기만 했다.

“목도리 일부러 싸구려로 샀어. 딱 올 겨울만 하고 다니라고. 내년엔 여친한테 받은 목도리 하고 다녀야 한다. 알았지?”

소휘는 이수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손을 흔들며 지하철 역사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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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좋지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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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행복한 💙 오늘 보내셔용~^^
2020 쥐뿔(?) 스팀 ♨ 힘차게 가즈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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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행 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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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고등학생때 추억하면서 쓰고 계신듯 하네요..ㅋ 아니면 제가 추억을 떠올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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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핫,,, 좋은 추억이 있으신가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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